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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밈MEME의 시대인가?
바우어의 <할렘 쉐이크>는 역대 빌보드 핫100 차트 1위 곡 중 가장 기이한 곡이다. 우선 이 곡에는 노래 혹은 랩이라 부를만한 부분이 없다. 샘플링한 스페인어 나레이션과 곡의 제목이 담긴 짧은 랩 그리고 심드렁한 사자 울음소리가 양념처럼 올려져 있을 뿐이다. 이른바 클럽 튠이다. 어두운 클럽에서 우퍼를 울리기 위해 만들어진 곡이 양지의 대형 간판에 걸린 셈이다. <할렘 쉐이크>는 홍보를 위한 공식 뮤직비디오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 유튜브에서 <할렘 쉐이크>를 검색하면 결과화면에 약 1,400만 건의 비디오를 볼 수 있다. <할렘 쉐이크>를 사용한 UCC 비디오다. 유튜브 코미디언 필시 프랭크가 타이즈를 입고 곡의 빌드 업과 드롭 타이밍에 맞춰 반전 있는 비디오를 만든 후 불과 열흘도 안 돼 12,000 건이 넘는 비디오가 올라왔다. 사람들은 <할렘 쉐이크>의 뮤직비디오를 보기 위해 기다리는 대신 삽입된 랩처럼 ‘두 더 할렘 쉐이크(Do The Harlem Shake)’했다.
외국 매체는 <할렘 쉐이크> 현상을 ‘거대한 밈’이라 표현한다. 밈은 문명 발달의 한 축인 문화 복제를 설명하기 위해 리처드 도킨스가 고안한 개념이다. 모바일 시대 밈은 실시간 소셜 미디어의 팽창에 힘입어 보다 광범위하고 통제 불가능하게 복제된다. 가장 위력을 발하는 밈은 유머다. 가끔 위험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유머는 효과적인 대화 방법이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타임라인에서 누구나 소셜 미디어의 제작자 혹은 중계자가 될 수 있는 지금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9개그’와 ‘노유어밈’에서 복제하거나 응용한 밈은 간편하게 ‘좋아요’와 ‘리트윗’을 부른다. 소개팅 자리에 개그콘서트에서 익힌 유행어 한두 개 익혀두고 가면 든든하지 않던가. 이제 밈은 언제든지 주머니에서 꺼내 쓸 수 있는 특정한 유머 패턴을 일컫는 단어로 통용된다.
유행어로 소개팅 자리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것과 밈으로 몇만 달러를 버는 건 다른 얘기다. 예술의 전통적인 가치를 수호하는 이에게 이는 부당하고 박탈감이 드는 일일 수 있다. 그와 상관없이 빌보드 지는 <강남 스타일>의 성공 이후 핫 100 차트에 유튜브 조회 수를 추가했다. <할렘 쉐이크>는 새로운 기준의 첫 수혜자다. 사람들이 많이 듣거나 많이 사는 음악 대신 밈이 되어 더 많은 복제품을 양산하는 곡이 차트에서 성공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음악가는 좋은 음악의 기준을 버리고 ‘두 더 할렘 쉐이크’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걸까. 지금과 환경은 다르지만, <강남 스타일>의 성공 이전에 <마카레나>의 성공이 있었다. 빌보드 차트에서 14주간 1위를 한 <마카레나>는 원곡이 아니라 현지의 기준에 맞게 리믹스한 곡이다. <강남 스타일> 역시 YG답게 글로벌 팝의 기준과 수준을 어느정도 쫓은 곡이다. <할렘 쉐이크>는 작년 5월에 발매되어 이미 클럽에서 트랩 음악 장르의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이 됐다. 이는 음악의 완성도가 절대 조건은 아니더라도 거대한 밈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임을 알려준다.
물론 <할렘쉐이크>의 밈 되기 전과 된 후의 유튜브 조회수는 통계 곡선에 절벽을 그려 놓은 것처럼 차이가 크다. 어느 성인사이트에서는 GIF 애니메이션이 된 싸이가 말 춤을 추며 후배위를 한다. 밈과 좋은 음악의 관계는 느슨하고 언젠가 주객이 전도되었단 판단을 내려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음악이 들리는 미디어도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변한다. 이제 우리는 항상 네트워크와 연결된 기기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여기엔 소셜 알고리즘으로 만들어진 변수의 유혹이 넘실댄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인기는 한국의 밈이라 불리는 디씨인사이드의 ‘합성필수요소’에서 왔다. 이제 그들은 미미시스터즈와 함께 하지도 펄럭 춤을 추지도 않고 꾸준히 좋은 음반을 내고 공연한다. 소개팅 자리에서 유행어로 분위기를 띄워도 결국 다음 약속을 받아내는 건 본인의 매력이다. 결국, 시대가 변하더라도 좋은 음악이라면 밈과 관계없이 스스로 가치를 지켜나갈 거라 믿는 수 밖에 없다. 비록 그 믿음이 안일하더라도 말이다.
2013년 4월 GQ 기고
* 여러 사정으로 잡지엔 2/3 정도 분량으로 깔끔하게 편집 돼 실렸다. 잡지에 실린 쪽이 더 보기 좋다.
havaqquq on GQ '서른 살은 목마르다' (uncut ver.)
가벼운 어깨와 엉덩이.